5.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5.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와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족보로 압축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마태복음 1장 족보에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언약의 성취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음을 보여주며, 누가복음
3장 족보에서는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하여 아담과 하나님까지 하나로 연결된 구속사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마태복음
(마태복음 1장 1-17절)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예수님의 족보에는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왕』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족보에 대해 기술하고
있고, 이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권을 잇는 왕족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다윗의 혈통을 이은 당당한 왕이시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는 당시 로마의 정권으로 세워진 헤롯왕과는 구별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은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예레미야는 다윗의
자손인 메시야에 대하여『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명과 정의를 행할 것이라』(렘23:5).
둘째, 이 왕의 족보에 다섯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다말과 라합, 룻, 밧세바, 마리아인데, 이중 라합과 룻은 모두 이방여인이다. 이 여인들이 한결같이 흠이 있는 사람들이고, 이런 인물들을
통해 다윗왕가가 생겨나고 이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나라를 잃었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그저 육신의 혈통만으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육신의 혈통을 따른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세워지는 새로운 이스라엘, 영적 이스라엘의 등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번째, 이 족보는 계속해서 낳고 낳고 낳고로 이어지고 있다. 다윗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생명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심판과 죽음을 가져오신 것이 아니라 죽어야 마땅할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여 살리고, 새로운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2) 누가복음
(누가복음 3장 23-38절)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얀나요 그 위는 요셉이요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아모스요 그 위는 나훔이요 그 위는 에슬리요 그 위는 낙개요 그 위는 마앗이요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서머인이요 그 위는 요섹이요 그 위는 요다요 그 위는 요아난이요 그 위는 레사요 그 위는 스룹바벨이요 그 위는 스알디엘이요 그 위는 네리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앗디요 그 위는 고삼이요 그 위는 엘마담이요 그 위는 에르요 그 위는 예수요 그 위는 엘리에서요 그 위는 요림이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시므온이요 그 위는 유다요 그 위는 요셉이요 그 위는 요남이요 그 위는 엘리아김이요 그 위는 멜레아요 그 위는 멘나요 그 위는 맛다다요 그 위는 나단이요 그 위는 다윗이요 그 위는 이새요 그 위는 오벳이요 그 위는 보아스요 그 위는 살몬이요 그 위는 나손이요 그 위는 아미나답이요 그 위는 아니요 그 위는 헤스론이요 그 위는 베레스요 그 위는 유다요 그 위는 야곱이요 그 위는 이삭이요 그 위는 아브라함이요 그 위는 데라요 그 위는 나홀이요 그 위는 스룩이요 그 위는 르우요 그 위는 벨렉이요 그 위는 헤버요 그 위는 살라요 그 위는 가이난이요 그 위는 아박삿이요 그 위는 셈이요 그 위는 노아요 그 위는 레멕이요 그 위는 므두셀라요 그 위는 에녹이요 그 위는 야렛이요 그 위는 마할랄렐이요 그 위는 가이난이요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누가복음은 이방인이며 의사였던 누가가 기록했다. 그는 사도바울과 동행한 사람이다. 사도바울과 함께 동행하면서 사도행전, 누가복음을 기록했다. 그래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오는 중요한 공통분모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공동체에 메시아를
기다리며 율법을 지키던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믿고 믿음의 공동체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통해서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믿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다 라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누가복음, 사도행전에서 강조한 것 중에 하나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된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교회 안에 유대인들과 새로운 공동체에 들어온 이방인들과 굉장한 긴장관계가 있었다. 이런 긴장감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방인들이었다. 그리고
이방인이었던 누가 본인도 이런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는 이 점에 있어서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오셨을 뿐만아니라 이방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오셨다는 것을 전하길 원했다. 그런
배경가운데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누가복음에 나오는 족보와 마태복음에도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그리스도의 계보는 아브라함까지만 추적하게 된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위해서 오셨고 유대인들의 메시아가 되신다
라고 하면서 아브라함을 통하여서 많은 자손이 나오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나오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선택된 민족으로 삼아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계보를 아브라함까지만 추적하게 된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3장 23-38절까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결국에는 예수님의 탄생까지는 요셉의 아들로 시작해서 아브라함 다윗 아담에 까지 계보를
쫓아서 추적해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누가는 예수님의 정체성과
이스라엘 왕권에 대한 법적 권리를 증명하기 위해 다윗 왕까지 포함한 족보를 상세히 기록하여 예수님을 소개한다. 그것
뿐만 아니라 이 아담과 하나님에게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계보를 추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위한 메시아일 뿐만아니라 만인의 소망의 성취이시며, 모든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다 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아담까지 그 계보를 추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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