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기록된 족보
4.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기록된
족보
에스라와 느헤미야서에 계속해서 나열된 족보는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이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된다. 더 나아가 포로로 잡혀간 선조들과 지금 귀환한 후손들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여,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이방인과 유다인의 혈통이 섞이지 않도록 혼인 제도를 바로 잡고(스 9-10장, 느 13:23-31),
단호한 신앙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스라엘이 국토가 유린되고 70년간이나 포로가 되었던 상황에서도 족보가 잘 보존된 것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신 축복의 언약을 계승하여
메시아가 오실 순수한 혈통을 지키려는 하나님의 구속 섭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에스라 9장 1-15절)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 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 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의 2차 귀환이 마쳤다. 출발과
도착 사이를 설명하는 자세한 문장은 없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걸어야 했던 그 먼 거리의 여정은 수많은
우여곡절의 문장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우여곡절을 넘어 무사히 예루살렘까지 도착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빠질 수 없었다. 그렇게 주님의 은혜로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에스라는 몹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과 관계를 끊지 못하고
결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결혼은 단순한 결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그들의 결혼에는 하나님이 주체가 아니라, 자신과
자기 아들이 주체가 되어 있다.
결국, 이방인과의 결합은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하나님이
빠져 있고, 자신이 주체가 된 영적이고 신앙적으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심각한 결합이었다.
신앙의 공동체성을 바로 세워야 하는 중요한 이 시점에 이방인과의 결혼은 그 공동체성을 완전히 와해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이방인과의 결혼을 율법에서 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은
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는데 더 심각한 것은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지도자들이 오히려 이 잘못된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는 것이다. 포로 귀환도 이루어졌고, 성전도 재건되는 등 외형적으로는 무언가
공동체성을 이루어 가는 듯 보였지만, 실제적인 내면의 상태는 심각했다.
무엇 때문에 포로의 아픔을 겪어야 했는지 충분히 돌아볼 기회가 있었음에도 또 귀환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
할지 충분히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또 나태해졌다. 이스라엘 백성의 소식을 들은
에스라의 첫 반응은『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옷을 찢는 행동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을 듣거나 보았을 때 가지는 슬픔이나 놀람의 표현이다. 에스라는
이 반응 후 그 백성이 지은 죄를 자신의 죄로 끌어안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부끄럽고 낯이 뜨거워 차마 하나님께 얼굴을
들 수 없는데, 이유는 우리의 죄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의
죄라고 하지 않고, 우리의 죄라고 하며 자신도 죄를 지은 그들 안에 포함시켰다. 에스라는 과거 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언급을 하며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다시 회복의
기회를 주셨는데 또다시 주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금 범한 죄가 어떠한 죄인지를 고백하며 그 예로 과거 가나안 땅을 언급했다.
가나안 땅은 우상을 숭배하는 땅이기에 구석구석 더럽혀지지 않은 곳이 없었고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에서 그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하여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지 못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고 또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음에도, 지금 똑같은 죄를 반복하여 짓고 있으니 이제 주님이 어떤 징계를 내리신다 하여도 핑계할 것이 없다며 죄를 구체적으로 솔직히 인정하고 자백했다.
(에스라 10장 1-44절)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이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니라 그가 들어가서 사로잡혔던 자들의 죄를 근심하여 음식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들에게 공포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따라 삼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의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모임에서 쫓아내리라 하매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들이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아홉째
달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 때문에 떨고 있더니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의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각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여 이 일로 인한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그들을 돕더라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그대로 한지라 제사장 에스라가 그 종족을 따라 각각 지명된 족장들 몇 사람을 선임하고 열째 달 초하루에 앉아 그 일을
조사하여 첫째 달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의 일 조사하기를 마치니라 제사장의 무리 중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는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의 형제 마아세야와 엘리에셀과 야립과 그달랴라 그들이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 그들의 아내를 내보내기로 하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숫양 한 마리를 속건제로 드렸으며 또 임멜 자손 중에서는 하나니와 스바댜요 하림 자손 중에서는 마아세야와 엘리야와 스마야와 여히엘과 웃시야요
바스훌 자손 중에서는 엘료에내와 마아세야와 이스마엘과 느다넬과 요사밧과 엘라사였더라 레위 사람 중에서는 요사밧과 시므이와 글라야라 하는 글리다와
브다히야와 유다와 엘리에셀이었더라 노래하는 자 중에서는 엘리아십이요 문지기 중에서는 살룸과 델렘과 우리였더라 이스라엘 중에서는 바로스 자손 중에서는
라먀와 잇시야와 말기야와 미야민과 엘르아살과 말기야와 브나야요엘람 자손 중에서는 맛다냐와 스가랴와 여히엘과 압디와 여레못과 엘리야요 삿두 자손
중에서는 엘료에내와 엘리아십과 맛다냐와 여레못과 사밧과 아시사요 베배 자손 중에서는 여호하난과 하나냐와 삽배와 아들래요 바니 자손 중에서는 므술람과
말룩과 아다야와 야숩과 스알과 여레못이요 바핫모압 자손 중에서는 앗나와 글랄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다냐와 브살렐과 빈누이와 므낫세요 하림 자손
중에서는 엘리에셀과 잇시야와 말기야와 스마야와 시므온과 베냐민과 말룩과 스마랴요 하숨 자손 중에서는 맛드내와 맛닷다와 사밧과 엘리벨렛과 여레매와
므낫세와 시므이요 바니 자손 중에서는 마아대와 아므람과 우엘과 브나야와 베드야와 글루히와 와냐와 므레못과 에랴십과 맛다냐와 맛드내와 야아수와 바니와
빈누이와 시므이와 셀레먀와 나단과 아다야와 막나드배와 사새와 사래와 아사렐과 셀레먀와 스마랴와 살룸과 아마랴와 요셉이요 느보 자손 중에서는 여이엘과
맛디디야와 사밧과 스비내와 잇도와 요엘과 브나야더라 이상은 모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라 그 중에는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왔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이방여인과 결혼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역사속에서 돌아보건대 이 일은 언제든 죄악으로 접어들 수 있는 매우 악한 일이었다. 이런 이스라엘 전체를 회개하게 만든 것은 바로 단 한 사람, 에스라의
기도였다. 너무나 참담한 상황에서 에스라가 회개기도를 시작하자 남자와 여자, 심지어 어린이들까지 울며 성전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 때 스가냐라는
사람이 모인 무리들에게 매우 파격적인 결단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 결단은 바로 이스라엘 남자들 가운데
이방인들과 결혼한 모든 남자들은 이혼하자는 것이다. 심지어 그 자식까지도 돌려보내야 함을 주장한다.
스가냐의 이런 제안은 단순히 은혜 받아서 내뱉는 충동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제안 안에는
쓰라린 이스라엘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 생활의 원인은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여 남겨둔 족속들을 통해 시작된 우상숭배였다. 또한 솔로몬의 정략결혼으로
당시 열강들인 애굽과 모압과 암몬과 에돔, 시돈과 헷 족속의 여인들이 왕비로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예루살렘에 그들의 신을 데리고 들어옴으로 확대되었다. 이후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의 타락과 죄 속에서 살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지자 그 죄의 심판을 후손들이 당하게 된 것이다.
스가냐의 제안은 회개가 정말 의미 있고 진실한 회개가 되기 위해서는 실제 삶에서부터 하나님 말씀으로 회복하는 것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가냐의 제안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실행해야
할 일임도 잘 알았다.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신 하나님 앞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가정이 정결하게 되지
못하면 아무리 회개하고 개혁을 이룬다고 한들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잘못으로 되돌아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렇다고
해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돌려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요나단, 야스야, 므술람, 삽브대가 스가냐의 제안을 반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큰 것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님께서 최초로 세우신 공동체인 가정이 말씀 안에서 바로 서지 않으면, 국가
공동체도 말씀 안에서 바로 설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기본이었다.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소망하기 이전에 실제 그들의 삶에서 작은 하나님의 나라들을 이루어야 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하나 되지 못하고 언제나 우상숭배의 유혹에 공개되어있는 가정으로는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지 못함을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출발점이 개개인은 물론이거니와 각 가정의 신앙회복이었고, 그것을
위해 아내 된 이방여인들의 유혹을 애초에 차단할 수 있는 이혼이 필요함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스라는 스가냐의 힘을 주고 격려하는 메세지를 들은 후에도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포함한 거의 모든 백성들이 이방인 아내와 자녀들을 돌려보내겠다고 맹세까지 했다. 그런데도
에스라는 여전히 성전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음식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으며 지냈다.
개혁이란 이처럼 고통스러운 것이다. 지도자로서 개혁을 한다는 것은 그저 멋진 일이 아니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길을 간다는 운치 있는 일도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개혁은 강제 이혼이라는 무차별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이었다. 멀쩡하던 가족이 종교라는 이름아래
찢겨지는 것은 현실이지만, 곧 회복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일이었다. 현실의 삶을 찢어냄과 동시에 당장은 보이지 않는 이상을 잡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
에스라는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마음 때문에,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타까워하는 성실함 때문에 성전에서
계속 금식기도를 드렸다. 에스라는 말로만 개혁을 이야기하는 말꾼이 아니라 실제 개혁을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도 후에 에스라는 『3일 이내에 예루살렘으로 모이라』고 이야기를 하였고, 에스라의 요청에 사람들은 모였다. 때는 아홉째 달, 기슬르월로 12월이며 겨울이고, 우기였다. 추운 겨울,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자신들이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음으로 일어난 죄악을 생각했고, 하나님의 징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 두려움으로 떠는 일이었다. 죄로 인해 나라를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죄로 인해 아내와 자녀들과의 이별이라는 고통을 경험하고 있었다. 죄는 이처럼 치명적인 아픔을 준다. 죄는 시간과 공간, 세대를 이어 우리를 괴롭힌다. 죄로 인한 상처는 죄를 지은 당사자뿐 아니라 쫓겨난 이방인 아내와 자녀들에게도 깊이 남게 된다.
깊이 박혀있던 죄악, 많은 사람들이 죄의식 없이 행해왔던 죄악을 드러내고 피 흘림 가운데
도려낸 영적 수술을 이루게 된 그 출발점은 바로 에스라의 가슴아파함이었고, 뜨거운 눈물이었다. 한 사람의 영적인 헌신은 공동체를 변화시킨다. 한 사람의 영적 바른
분별과 결단은 민족과 나라를 살린다. 한 사람의 책임 있는 기도는 멸망의 길로 가는 백성을 돌아서게
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역대하 7:14)
(느헤미아 12장 1-47절)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러하니라 제사장들은 스라야와 예레미야와 에스라와 아마랴와 말룩과 핫두스와 스가냐와 르훔과
므레못과 잇도와 긴느도이와 아비야와 미야민과 마아댜와 빌가와 스마야와 요야립과 여다야와 살루와 아목과 힐기야와 여다야니 이상은 예수아 때에 제사장들과
그들의 형제의 지도자들이었느니라 레위 사람들은 예수아와 빈누이와 갓미엘과 세레뱌와 유다와 맛다냐니 이 맛다냐는 그의 형제와 함께 찬송하는 일을
맡았고 또 그들의 형제 박부갸와 운노는 직무를 따라 그들의 맞은편에 있으며 예수아는 요야김을 낳고 요야김은 엘리아십을 낳고 엘리아십은 요야다를
낳고 요야다는 요나단을 낳고 요나단은 얏두아를 낳았느니라 요야김 때에 제사장, 족장 된 자는 스라야
족속에는 므라야요 예레미야 족속에는 하나냐요 에스라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아마랴 족속에는 여호하난이요 말루기 족속에는 요나단이요 스바냐 족속에는
요셉이요 하림 족속에는 아드나요 므라욧 족속에는 헬개요 잇도 족속에는 스가랴요 긴느돈 족속에는 므술람이요 아비야 족속에는 시그리요 미냐민 곧 모아댜
족속에는 빌대요 빌가 족속에는 삼무아요 스마야 족속에는 여호나단이요 요야립 족속에는 맛드내요 여다야 족속에는 웃시요 살래 족속에는 갈래요 아목
족속에는 에벨이요 힐기야 족속에는 하사뱌요 여다야 족속에는 느다넬이었느니라 엘리아십과 요야다와 요하난과 얏두아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이 모두 책에
기록되었고 바사 왕 다리오 때에 제사장도 책에 기록되었고 레위 자손의 족장들은 엘리아십의 아들 요하난 때까지 역대지략에 기록되었으며 레위 족속의
지도자들은 하사뱌와 세레뱌와 갓미엘의 아들 예수아라 그들은 그들의 형제의 맞은편에 있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령대로 순서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맛다냐와 박부갸와 오바댜와 므술람과 달몬과 악굽은 다 문지기로서 순서대로 문안의 곳간을 파수하였나니 이상의 모든 사람들은 요사닥의 손자
예수아의 아들 요야김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 때에 있었느니라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이에 노래하는 자들이 예루살렘 사방 들과 느도바 사람의
마을에서 모여들고 또 벧길갈과 게바와 아스마웻(아스마웨ㅅ) 들에서 모여들었으니 이 노래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예루살렘 사방에 마을들을 이루었음이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니라 이에 내가 유다의 방백들을 성벽 위에 오르게 하고 또 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를 둘로 나누어 성벽 위로 대오를 지어 가게 하였는데 한 무리는 오른쪽으로 분문을 향하여 가게 하니 그들의 뒤를 따르는 자는
호세야와 유다 지도자의 절반이요 또 아사랴와 에스라와 므술람과 유다와 베냐민과 스마야와 예레미야이며 또 제사장들의 자손 몇 사람이 나팔을 잡았으니
요나단의 아들 스마야의 손자 맛다냐의 증손 미가야의 현손 삭굴의 오대 손 아삽의 육대 손 스가랴와 그의 형제들인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라 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잡았고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샘문으로 전진하여 성벽으로 올라가는 곳에 이르러 다윗
성의 층계로 올라가서 다윗의 궁 윗 길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수문에 이르렀고 감사 찬송하는 다른 무리는 왼쪽으로 행진하는데 내가 백성의 절반과 더불어
그 뒤를 따라 성벽 위로 가서 화덕 망대 윗 길로 성벽 넓은 곳에 이르고 에브라임 문 위로 옛문과 어문과 하나넬 망대와 함메아 망대를 지나 양문에
이르러 감옥 문에 멈추매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무리가 하나님의 전에 섰고 또 나와 민장의 절반도 함께 하였고 제사장 엘리아김과 마아세야와 미냐민과
미가야와 엘료에내와 스가랴와 하나냐는 다 나팔을 잡았고 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 때문이라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러하여 모두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명령을 따라 행하였으니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지도자가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스룹바벨 때와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몫을 주되 그들이 성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성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족보가 나온다. 7장에도 족보가 나오는데 73절까지
있다. 12장 1-26절까지의 명단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명단이다. 1-7절의 명단은 고레스의 칙령으로
1차로 귀환할 때의 제사장들의 명단이고, 8-11절은 레위인의 명단이다. 그리고 12-21절은 요야김이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귀환한 제사장들의
명단이다. 요야김은 1차로 돌아올 때의 대제사장이었던 예수아의
아들이자 대를 이어 대제사장이 된 사람이다. 그래서 12-21절은
제2세대로 귀환한 제사장들의 명단이다. 그리고 22-26절은 요야김의 아들, 엘리아십이 대제사장일 때에 돌아온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명단이다. 이들은 당시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다.
그래서 1-26절까지의 명단은 당시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뿐만 아니라, 90-100년 전의 조상들의 명단까지 함께 포함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된 것은 자신들이 해방운동을 펼쳤기 때문도 아니고, 비용을 치렀던 것도
아니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1차로 돌아와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2차, 3차로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조상들의 이름을
모두 기록해 놓은 것은 그들을 돌아오게 해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먼저 돌아오는 용기를 보여준 조상에 대한 감사 때문으로 여겨진다.
27-43절은 성벽 봉헌식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니라』성전을 봉헌을 하든, 성벽을 봉헌하든, 예배를 올려드리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봉헌을 하는 사람들의 정결함이었다. 봉헌을
드리는 사람의 정결함이 최고의 예물이다. 정결하게 한 순서가 제사장,
레위인, 백성들, 성문, 성벽 순이다.
『이에 내가 유다의 방백들을 성벽 위에 오르게 하고 또 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를 둘로 나누어 성벽 위로 대오를 지어 가게 하였는데 한 무리는 오른쪽으로 분문을 향하여 가게 하니』성벽 봉헌식은
백성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성벽으로 올라가 성을 밟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이
성벽을 중건하려고 할 때에 반대자들이 이렇게 조롱을 했었다. 느헤미야
4장 1-3절에서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산발랏과 도비야를 비롯한 반대자들은 집요하게 성벽을 중건하려는 것을 방해하고,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것이다』라고 조롱을 했다. 그런데 온 유다 사람들이 그 성벽으로 올라가 성벽
봉헌식을 하고 있다. 당시 예루살렘 성벽은 그 폭이 약 9피트(2.7m) 정도였다고 한다. 2-3명 정도가 나란히 서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3일 후에
돌아보기 시작했던 문인 골짜기 문에서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골짜기 문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양문까지 양 방향으로 행진을 했다.
한 무리는 분문(변소 문)이 있는 오른쪽 방향으로
나아가고 또 한 무리는 반대편으로 나아갔다. 오른쪽으로 향하는 무리는 에스라와 호세야가 선두에서 서서
인도하였다. 반대편으로 나아가는 무리는 느헤미야가 인도하였다. 그런데
『감사 찬송하는 다른 무리는 왼쪽으로 행진하는데 내가 백성의 절반과 더불어
그 뒤를 따라 성벽 위로 가서 화덕 망대 윗길로 성벽 넓은 곳에 이르고』
분문쪽으로 향했던 무리를 이끈 에스라는 앞장서서 인도를 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앞서서
인도를 하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 느헤미야가 없었다면 성벽 중건공사는 불가능했다. 온갖 반대와 모함, 조롱을 이겨내었다. 그의 신분이 총독이었기 때문에 그는 호의호식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성들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서 12년 동안이나 총독의 봉급을 받지 않았다. 이제 대망의 봉헌식이다. 그 때에 그는 가장 주목받는 자리에 가서
서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는 뒤따라서 갔다.
양문에서 성밟기가 끝나고 내려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성벽 봉헌식이 끝이 났다.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모든 백성들이 함께 아주 즐거워했는데, 그 이유가 하나님께서 즐겁게 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할 수 있었다. 당시에 여인들과 어린 아이들은 인구수에 포함이 되지 않았던
소외계층이었다. 그 사람들도 함께 즐거워했다는 것은 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즐거워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고 한다. 이렇게 예배가 회복되자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
등을 다시 드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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