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세기의 족보

1. 창세기의 족보


족보는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법적 왕통으로서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혈통적 왕통이창세기 5장에서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가운데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이어가는 형상적 왕통으로위의 세가지 족보를 창세기 11장으로 연결하면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완성되는 것이다이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가를 보여주신다

창세기는 구속사를 압축한 열 개의 족보(톨레도트)로 구성되어 있다.특히 창세기 5장 1절에 아담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는데, ‘계보’는 히브리어로 ‘세페르 톨레도트’이며, 그 뜻은 ‘족보 책’dl다. 이는 창세기 5장의 족보가 단순한 인명 나열이 아닌, 하나님의 방대한 구속경륜을 압축하여 기록한 ‘책’과 같은 것임을 나타낸다.


창세기 5 1-2절『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이 계보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받는 사람(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받는 자들은 이 땅에서 죽는 자의 모습을 나타낸다. 역설적으로 죽어야 하는 삶은 생명을 낳게된다는 것이다. 생명을 해산하는 여자들, 즉 교회의 삶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나타낸다. 성도가 십자가를 부여잡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은 죄와 사망의 땅에서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것이다. 반대로 자기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자, 즉 악인들은 죽지 않으려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기 만의 성을 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둘째 사망에 처해지게 된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옛사람이 죽는 그런 삶을 사는 자들은 영원한 부활의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왜 이 땅에서 옛사람이 죽어야만 하는가? 그 이유는 옛사람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이 마음이 숨어져 있는 것이다.

이 삶이 바로 창세기 5장의 족보 속에서 나타난 에녹의 삶이다. 에녹의 삶은 믿음이 좋기 때문에 죽지않고 하나님 나라로 간다는 단순한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강권에 의해 건짐을 받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창세기 5장의 의미는 이 땅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그의 죽으심과 연합되고, 그의 부활과 연합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죽음을 빼고 단순히 부활만 믿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죽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창세기 5장의 계보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알려주신다. 그 복은 세상의 종말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복의 전달자가 된다.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자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하나가 되는 것과 닮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닮아가는 삶은 자기의 노력이 들어가지만, 하나가 되는 삶은 자기를 포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이 되는 것이다.

 

톨레도트(תֹּולְדֹ֖ת  계보)는 창세기에서 10번 정도 등장한다. 아들을 낳는 역사이다. 아들을 낳는 역사를 우리는 출애굽기에서 볼 수 있다. 베레흐 쉐모트가 바로 그들은 아들이다 라는 의미다. 아들은 세상적 혈통으로 아들로 생각되지만, 이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담(אָדָ֑ם)120번과 121번이 있다. 아담 자손의 계보라고 하는 아담은 121번으로서 첫사람 아담이라고 했는데, 의미상으로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는데, 그들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52절에서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해준다. 아담이라고 표현되므로 마치 아담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의 아담은 120번인데, 붉으스름한, 즉 인간으로 표현된다. 창세기 53(아담은 백삼십세에 …아들을 낳아)에 등장하는 아담은 사람 중에서 남자에 해당하는 아담인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엄밀히 사람인 것이다. 남자와 여자로 분리되기 전의 사람이다. 이 첫사람은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그리고 첫사람으로부터 남자(이쉬)와 여자(이샤)가 분리되는 것이다. 이 이쉬를 아담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즉 이 아담은 남자인 아담인 것이다. 남자인 아담은 세상에 태어난 모든 남자를 대변하고 여자인 하와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대변한다. 그들을 통해서 인류가 번식하고 확산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계보는 첫사람 아담의 계보가 아니라, 남자인 아담의 계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בִּדְמ֥וּת אֱלֹהִ֖ים עָשָׂ֥ה ) 접두어 베(בְּ)가 붙어있다. 창세기 11절에서 베레시트와 같은 개념이다. 베는 하나님의 집(장소)이라는 의미다. 영어의 in에 해당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모양)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모양이라는 말보다 형상이라는 말이 이해력을 높혀줄 수 있다.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 비드뭍(기본형:데뭍:1823)은 모양 닮음으로 되어있다. 창세기 126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했는데, 형상과 모양은 우리말 사전에서는 별로 차이가 없다. 외형적인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형상(영어:image)은 특별한 속성을 지닌 존재(그리스도)이라고 말을 할 수 있고, 모양(:likeness)은 형상을 가진 자와 질적으로 동질성을 지닌 존재라고 말을 할 수 있다. 몸의 외형적 형태가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같다는 말이다. 원본과 사본이 같다는 표현이다. 같다는 말은 동일한 효력을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형적인 어떤 사물에 대한 형상과 모양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모양)이 육체로 나타난 첫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이 아담 안에서 이 세상에 들어오는 것이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다. 다시 오시는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마지막 아담)이시다. 로마서 5 14절에서『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3-5.

וַֽיְחִ֣י אָדָ֗ם שְׁלֹשִׁ֤ים וּמְאַת֙ שָׁנָ֔ה וַיֹּ֥ולֶד בִּדְמוּתֹ֖ו כְּצַלְמֹ֑ו וַיִּקְרָ֥א אֶת־שְׁמֹ֖ו שֵֽׁת׃

וַיִּֽהְי֣וּ יְמֵי־אָדָ֗ם אַֽחֲרֵי֙ הֹולִידֹ֣ו אֶת־שֵׁ֔ת שְׁמֹנֶ֥ה מֵאֹ֖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וּ כָּל־יְמֵ֤י אָדָם֙ אֲשֶׁר־חַ֔י תְּשַׁ֤ע מֵאֹות֙ שָׁנָ֔ה וּשְׁלֹשִׁ֖ים שָׁנָ֑ה וַיָּמֹֽת׃ ס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가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세기 1장은 엘로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요한복음 1장에서는 호 로고스가 세상을 창조(아들을 낳는)하셨다고 말을 한다. 호 로고스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창세기 53절에서 아담이 아들을 낳는 것은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담이 130세에 하나님의 창조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믿음의 선진들은 아들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진리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자가 사람(아담)이다. 이는 남자와 여자로 분리되기 전의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53절에서 등장하는 아담은 남녀로 분리된 그 남자 아담인 것이다. 남자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여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교회)를 상징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함을 말해주신다. 남자인 아담이 130세에 셋을 낳았다는 것이다. 셋은 남자 아담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자(그리스도 상징)가 되는 것이다. 육적 몸이 죽어야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이게 구원이 된다.

창세기 114절에서 『징조(오트)와 사시(모에드)와 일자()와 연한(샤네)이 이루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시로 번역된 절기와 날들(), 년한(샤네)들은 모두가 징조라는 것이다. 징조(오트)는 신호, 깃발, 횃불, 기념비, 전조, 표시, 기적을 나타낸다. 표적은 실체를 가리키는 싸인이라는 것이다. 여러가지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계시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년한 즉 몇세에 죽었다 라는 표현의 연한도 표적이라는 말이다. 무엇인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징조(오트)에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언약이 담겨져 있다.

(year 샤나  שָׁנָ֔ה )에서 히브리어 샤나(8141)8138에서 유래;‘년’(시간의 ‘주기로’):전체의 시대로 표현되었다. 8138은 기본어근;‘접다’ 즉 ‘이중으로 하다’(문자적, 또는 상징적으로);함축적으로 ‘변경시키다’(자동사, 또는 타동사로):-×다시하다(잘하다, 때리다), 변경하다, 이중으로 하다, 변경하다(달라지다),변장하다, 다양화하다, 왜곡하다, (~쪽을)더 좋아하다는 뜻이다.

해는 날의 계속되는 반복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루 하루가 징조라는 것이다. 낮과 밤이 계속 반복되는 삶이 하루이고 인생이라는 말이다. 그런 반복되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사야 611절에서『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여기서 은혜의 해에서 해가 샤나이다. 이 말씀은 메시야의 구원을 설명하는 것이다. 샤나는 반복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변화시키는 의미도 있다. 바꾸는 것이 은혜이고, 하나님의 보복이 된다. 신원(나캄)의 날() 즉 하나님의 보복인 것이다. 보복은 하나님의 진노로서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하나님의 보복(진노하심)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자기를 부인하는 일(자기 십자가)이 될 것이다.

레위기 2510-13절에서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지라』희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하신  오십일 후에 성령이 임하신 사건과 동일하다.

샤나는 이렇게 수많은 표적의 이야기로 등장하지만, 창세기 53절에서는 죽는 나이로 등장하는 것이다. 죽는 나이는 구원을 위한 증표인 것이다. 로마서 65절에서『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여기에서 130이라는 숫자와 930이라는 숫자가 등장한다. 이들 숫자의 의미는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태어나고 죽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6-8.

וַֽיְחִי־שֵׁ֗ת אַֽחֲרֵי֙ הֹולִידֹ֣ו אֶת־אֱנֹ֔ושׁ שֶׁ֣בַע שָׁנִ֔ים וּשְׁמֹנֶ֥ה מֵאֹ֖ו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וּ֙ כָּל־יְמֵי־שֵׁ֔ת שְׁתֵּ֤ים עֶשְׂרֵה֙ שָׁנָ֔ה וּתְשַׁ֥ע מֵאֹ֖ות שָׁנָ֑ה וַיָּמֹֽת׃ ס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셋이나 에녹스가 깨달은 것은 여호와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에노스의 이름 속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우리는 에노스와 같은 이런 고백이 필요하다. 사도바울도 같은 고백을 한다. 갈라디아서 220절에서『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하나님이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인간이라는 존재는 허무하고 오직 하나님 만이 존재하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때 비로소 여호와를 불렀다는 것이다. 부르다 라는 의미는 부르짖다 라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고백인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고백하는 순간 여호와를 소유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곧 임마누엘(헬라어 파루시아)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하와는 가인을 낳았을 때 여호아를 낳았다고 말을 한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인의 후손을 가인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가인이 아벨을 죽여버린 것이다. 아벨의 이름은 허무가 된 것이다. 하와가 셋을 낳고 셋이 에노스를 낳았을 때 하나님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때 하나님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죽지 않으면 여호와를 소유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셋이 에노스를 낳는다. 에노스는 이쉬다. 이쉬(남자)는 땅을 가는 자다. 땅을 가는 자는 가인의 표상이다. 즉 하나님을 떠난 영들을 표현한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영들의 관계를 반복적으로 보여주신다. 가인과 가인을 예표하는 모든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보려고 노력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에게 자기의 의를 이루어보는데, 하나님은 그들이 실패할 것을 알고, 돌이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관계가 노아의 시대와 또 그 이후의 시대로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복음은 창세기 3 15절 이후에 계속 끊이지 않고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9-11.

וַֽיְחִ֥י אֱנֹ֖ושׁ תִּשְׁעִ֣ים שָׁנָ֑ה וַיֹּ֖ולֶד אֶת־קֵינָֽן׃

וַֽיְחִ֣י אֱנֹ֗ושׁ אַֽחֲרֵי֙ הֹולִידֹ֣ו אֶת־קֵינָ֔ן חֲמֵ֤שׁ עֶשְׂרֵה֙ שָׁנָ֔ה וּשְׁמֹנֶ֥ה מֵאֹ֖ו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וּ֙ כָּל־יְמֵ֣י אֱנֹ֔ושׁ חָמֵ֣שׁ שָׁנִ֔ים וּתְשַׁ֥ע מֵאֹ֖ות שָׁנָ֑ה וַיָּמֹֽת׃ ס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가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게난(7018)7064와 동형에서 유래;‘고정된’노아 홍수 이전의 사람으로 되어있다. 70647077에서 유래한 압축형;(고정된)‘둥지’, 때때로 ‘새새끼들’이 들어있는 둥우리;상징적으로는 ‘방’, 또는 ‘거처’:둥지, 방으로 표현되었다.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하나님이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때 비로소 여호와를 불렀다는 것이다. 부르다 라는 의미는 부르짖다 라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고백인 것이다. 그래서 셋이나 에노스는 하나님을 소유하게 되었다.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찾아가시는 것이다.

게난은 소유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었다는 말이다. 임마누엘이 되는 순간 비로소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는 사람(하나님의 형상을 갖는 첫사람)이 되는 것이다.

 

12-14.

וַֽיְחִ֥י קֵינָ֖ן שִׁבְעִ֣ים שָׁנָ֑ה וַיֹּ֖ולֶד אֶת־מַֽהֲלַלְאֵֽל׃

וַיְחִ֣י קֵינָ֗ן אַחֲרֵי֙ הֹולִידֹ֣ו אֶת־מַֽהֲלַלְאֵ֔ל אַרְבָּעִ֣ים שָׁנָ֔ה וּשְׁמֹנֶ֥ה מֵאֹ֖ו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וּ֙ כָּל־יְמֵ֣י קֵינָ֔ן עֶ֣שֶׂר שָׁנִ֔ים וּתְשַׁ֥ע מֵאֹ֖ות שָׁנָ֑ה וַיָּמֹֽת׃ ס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가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마할랄렐(4111)은 하나님의 찬양이라는 의미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다가가 주셨으며 임마누엘이 되므로 하나님의 찬양(영광)이 되는 것이다.

 

15-17.

וַֽיְחִ֣י מַֽהֲלַלְאֵ֔ל חָמֵ֥שׁ שָׁנִ֖ים וְשִׁשִּׁ֣ים שָׁנָ֑ה וַיֹּ֖ולֶד אֶת־יָֽרֶד׃

וַֽיְחִ֣י מַֽהֲלַלְאֵ֗ל אַֽחֲרֵי֙ הֹולִידֹ֣ו אֶת־יֶ֔רֶד שְׁלֹשִׁ֣ים שָׁנָ֔ה וּשְׁמֹנֶ֥ה מֵאֹ֖ו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וּ֙ כָּל־יְמֵ֣י מַהֲלַלְאֵ֔ל חָמֵ֤שׁ וְתִשְׁעִים֙ שָׁנָ֔ה וּשְׁמֹנֶ֥ה מֵאֹ֖ות שָׁנָ֑ה וַיָּמֹֽת׃ ס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가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야렛(3382) 3381에서 유래되었는데, 기본어근;‘내려오다’(문자적으로‘내려가다’ 인습적으로 해안, 경계, 적진지 등의 낮은 지역으로 내려가다; 또는 상징적으로 떨어지다); 사역동사로‘내려가게 하다’(위의 모든 적용에서): 풍성하게, 데리고 내려오다, 운반해 오다, 들어내리다, 내려 놓다(내려오게하다, 내려오는), 떨어지다(아래로 떨어지다), 내려가다(밑으로 내려가다), 매달리다, 참으로, 잠기다, 억누르다

야렛은 진리의 계승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찬양이 된 존재인 게난이 야렛에게 진리를 계승해 주는 것이다. 진리의 계승의 정점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그 동행하는 삶이 바로 에녹을 상징한다.

 

18-20.

וַֽיְחִי־יֶ֕רֶד שְׁתַּ֧יִם וְשִׁשִּׁ֛ים שָׁנָ֖ה וּמְאַ֣ת שָׁנָ֑ה וַיֹּ֖ולֶד אֶת־חֲנֹֽוךְ׃

וַֽיְחִי־יֶ֗רֶד אַֽחֲרֵי֙ הֹולִידֹ֣ו אֶת־חֲנֹ֔וךְ שְׁמֹנֶ֥ה מֵאֹ֖ו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וּ֙ כָּל־יְמֵי־יֶ֔רֶד שְׁתַּ֤יִם וְשִׁשִּׁים֙ שָׁנָ֔ה וּתְשַׁ֥ע מֵאֹ֖ות שָׁנָ֑ה וַיָּמֹֽת׃ פ

야렛은 일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가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에녹(2585)은 봉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2585 2596에서 유래되었으며, 기본어근; 본래의미는‘좁히다’【2614와 비교】; 상장적으로‘봉헌하다’,또는‘연단하다;- 낙상식하다, 가르치다

 

21-24.

וַֽיְחִ֣י חֲנֹ֔וךְ חָמֵ֥שׁ וְשִׁשִּׁ֖ים שָׁנָ֑ה וַיֹּ֖ולֶד אֶת־מְתוּשָֽׁלַח׃

וַיִּתְהַלֵּ֨ךְ חֲנֹ֜וךְ אֶת־הָֽאֱלֹהִ֗ים אַֽחֲרֵי֙ הֹולִידֹ֣ו אֶת־מְתוּשֶׁ֔לַח שְׁלֹ֥שׁ מֵאֹ֖ו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 כָּל־יְמֵ֣י חֲנֹ֑וךְ חָמֵ֤שׁ וְשִׁשִּׁים֙ שָׁנָ֔ה וּשְׁלֹ֥שׁ מֵאֹ֖ות שָׁנָֽה׃

וַיִּתְהַלֵּ֥ךְ חֲנֹ֖וךְ אֶת־הָֽאֱלֹהִ֑ים וְאֵינֶ֕נּוּ כִּֽי־לָקַ֥ח אֹתֹ֖ו אֱלֹהִֽים׃ 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봉헌된 자라는 것이다. 로마서 121-2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하나님께 봉헌된 자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다. 히브리서 11 5절에서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어떤 자인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삼백년에서 삼은 하늘의 숫자를 상징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삼(3)과 관련이 깊은 것이다. 에녹이 365년을 사는 중에 에녹을 65세에 낳았는데, 65년간의 인생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진리를 계승하는 단계에 있었지만, 므두셀라를 낳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구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모든 인간은 물에 빠져 죽어야 하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진실을 깨닫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300년 동안 살았다는 것이다.

 

25-27.

וַיְחִ֣י מְתוּשֶׁ֔לַח שֶׁ֧בַע וּשְׁמֹנִ֛ים שָׁנָ֖ה וּמְאַ֣ת שָׁנָ֑ה וַיֹּ֖ולֶד אֶת־לָֽמֶךְ׃

וַֽיְחִ֣י מְתוּשֶׁ֗לַח אַֽחֲרֵי֙ הֹולִידֹ֣ו אֶת־לֶ֔מֶךְ שְׁתַּ֤יִם וּשְׁמֹונִים֙ שָׁנָ֔ה וּשְׁבַ֥ע מֵאֹ֖ו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וּ֙ כָּל־יְמֵ֣י מְתוּשֶׁ֔לַח תֵּ֤שַׁע וְשִׁשִּׁים֙ שָׁנָ֔ה וּתְשַׁ֥ע מֵאֹ֖ות שָׁנָ֑ה וַיָּמֹֽת׃ פ

므두셀라는 일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므두셀라는 히브리어 알파벳을 파자하면 “그가 죽으면 그것을 보내리라” 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홍수이다. 그리고 스트롱 코드(4968)를 보면 창을 던지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자가 죽으면 심판이 임한다는 것이다. 심판이 이미 던져졌다는 것이다. 에녹이 자기 아들을 므두셀라로 지었다는 것은 므두셀라가 죽는 날(969)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에 임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은 것이다.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알고 살았던 것이다.

므두셀라가 살던 시대는 노아의 홍수심판이 가까운 시대였다.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았는데, 아담 때부터 노아까지 10대를 보았다. 므두셀라가 243세에  아담이 죽었다. 아담과 므두셀라는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같이 살았다. 아담은 므두셀라에게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주었을 것이다. 므두셀라가 243세때 아담 할아버지가 죽는 것을 목격했다. 므두셀라를 포함한 많은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되면 반드시 죽음이 찾아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에녹이 므두셀라 이름을『죽는 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올것이다』 라는 뜻으로 지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계속해서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므두셀라는 죽음, 재앙, 심판에서 구원받는 길을 노아와 같이 전했을 것이다. 홍수의 죽음 뒤에는 새생명으로 구원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뒤에는 부활이라는 생명이 찾아오는 것을 말해주신다.

 

28-31.

וַֽיְחִי־לֶ֕מֶךְ שְׁתַּ֧יִם וּשְׁמֹנִ֛ים שָׁנָ֖ה וּמְאַ֣ת שָׁנָ֑ה וַיֹּ֖ולֶד בֵּֽן׃

וַיִּקְרָ֧א אֶת־שְׁמֹ֛ו נֹ֖חַ לֵאמֹ֑ר זֶ֞֠ה יְנַחֲמֵ֤נוּ מִֽמַּעֲשֵׂ֨נוּ֙ וּמֵעִצְּבֹ֣ון יָדֵ֔ינוּ מִן־הָ֣אֲדָמָ֔ה אֲשֶׁ֥ר אֵֽרְרָ֖הּ יְהוָֽה׃

וַֽיְחִי־לֶ֗מֶךְ אַֽחֲרֵי֙ הֹולִידֹ֣ו אֶת־נֹ֔חַ חָמֵ֤שׁ וְתִשְׁעִים֙ שָׁנָ֔ה וַחֲמֵ֥שׁ מֵאֹ֖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 כָּל־יְמֵי־לֶ֔מֶךְ שֶׁ֤בַע וְשִׁבְעִים֙ שָׁנָ֔ה וּשְׁבַ֥ע מֵאֹ֖ות שָׁנָ֑ה וַיָּמֹֽת׃ ס

라멕은 일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셋의 7대손인 라멕은 777세를 살다가 죽은 사람이다. 777은 구원의 상징적인 숫자이기도 하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은 7, 가인의 후손 라멕은 77배가 등장한다. 그리고 여기 셋의 후손인 라멕은 777이라는 숫자이다.

라멕은 자신에게 부여된 인생 속에서 믿음의 후손 노아를 낳는다. 그리고 노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예언하여 말한다. 그는 노아라는 아들이 『땅이 저주 받은 뒤에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시리라』( 5:29)고 말했다. 라멕은 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믿음의 눈이 있었고, 소망으로 노아를 양육하였고, 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을 따라 살던 라멕은 영적으로 강한 자가 되어 범죄가 관영하였던 홍수 이전의 시대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자가 된 것이다.

라멕이라는 이름이 또 있었다. 가인의 계통을 따라 아담의 7대손으로 나타난 라멕은 한 마디로 무자비한 사람이다. 그는 가인처럼 또 다시 살인의 죄를 범한 사람이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소년을 살해했다. 그는 살인 후, 그것을 노래로 지어 자신의 아내 아다와 씰라를 향하여 들려준다. 결혼제도를 파괴한 사람 라멕은 인류 최초로 살인을 한 가인과는 달리 두려움조차 없다.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의 보호를 간구하였다. 라멕은 살인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심판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라멕에게서 죄가 관영하였으며 라멕은 세상에 가득찬 죄의 정점에서 인간타락의 극단적인 모습을 자세히 보여준다.

 

32.

וַֽיְהִי־נֹ֕חַ בֶּן־חֲמֵ֥שׁ מֵאֹ֖ות שָׁנָ֑ה וַיֹּ֣ולֶד נֹ֔חַ אֶת־שֵׁ֖ם אֶת־חָ֥ם וְאֶת־יָֽפֶת׃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노아(5146)5118에서 유래되고, 이는 5117에서 다시 유래되었다. 조용한’:-쉬다(쉬는, 쉬는 곳)의 의미를 갖는다.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는 10대의 계보를 나타낸다. 계보는 사람의 혈통에 따른 족보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상 창조이후 10대까지 이어지다가 모든 인류가 멸절당하고 방주로부터 새창조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에 있어서 죽어야 새창조가 일어난다는 진리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 마지막 정점에 노아가 등장하는 것이다. 쉰다는 것은 안식한다는 의미로 받아드려질 수 있다. 구원의 종착점은 하나님의 안식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안식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11 10-32절)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11 10절에서『셈의 족보(히브리어 톨레도트:헬라어 게네시스)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셈의 자손 중에는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도 있지만, 구원받은 자에 대한 이야기를 족보를 통하여 표현하는 것이 톨레도트다. 창세기 2 4절에서『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내력이 톨레도트다. 2 5절부터 아담과 하와의 창조이야기가 등장하고 가인과 아벨, 이후의 자손들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떠난 자들의 모습들이 이어지면서 하나님의 구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설명하시는 것이다.

원래 그리스도 안에 있던 자들인데, 그리스도를 떠나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자들을 어떻게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하나님 나라로 복귀하게 될 것인가를 족보라는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5 1절에서  톨레도트가 등장한다.『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죽었더라, 죽었더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것이 창세기 10장으로 이어진다. 10 1절에서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그리고 11 10절에서 셈의 후예로 이어진다. 톨레도트(게네시스)는 영어로 generation으로 마태복음 11절로 연결된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역으로 올라가면 다윗과 아브라함과 하나님으로 연결된다. 이 복잡한 계보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택된(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로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로 부터 이탈되어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함수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 함수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고자 하는 자들 가운데 역사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고 있으시다는 것이다. 10 21절에서『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에벨은 셈의 아들이 아니다. 에벨은 노아의 4대 손이고, 셈의 3대 손이다. 왜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했는가? 에벨(히브리어 헤벨)은『건너가 다른쪽에 이주하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헤벨이 시간이 흐르면서 『히브리』로 변형되었다. 하나님의 선택과 요구로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서 다른 쪽에 있는 지역, 가나안으로 이주한 히브리 사람들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벨탑 사건 이후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이미 정하고 계신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비록 이 세상에 나그네로 살지만, 세상의 강을 건너 하나님 나라로 이주하는 자인 것이다. 그것이 에벨(헤벨), 히브리, 이스라엘, 영적인 교회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어야만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특별히 택하여 생명으로 이주시켜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이 땅에서 미리 죽음을 경험하게 하신다. 그 죽음은 옛사람의 죽음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죽음인 것이다.

10장은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로 구성되어 있지만, 11장에는 셈의 후예들에 대한 족보가 반복된다. 창세기 10 25절에서『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이 족보 이후에 바벨탑 사건이 등장하는데, 즉 바벨탑 사건은 벨렉과 욕단의 후예들이 일으킨 사건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세상이 나뉘었음이요』이 말은 히브리어 원어(파래그)로 볼 때,『강한 압력으로 쪼개지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 단어의 명사가 바로 벨렉이다. 벨렉 때 세상(에렛츠:)이 나뉘어졌는데, 그 때 땅이 큰 압력에 의해 나뉘어졌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세상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땅도 지각변동을 일으켜 나뉘게 하셨다는 의미로 받아드려진다.

벨렉은 노아의 아들인 셈의 4대 손이다. 노아의 홍수가 끝난 뒤에 불과 100년 정도 뒤에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았다는 것이다. 노아는 홍수 뒤에도 350년을 더 살았으며, 950세에 죽었다. 셈도 98세에 방주에서 나와서 100세에 첫 아들을 낳고 500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 노아와 셈의 손자 손녀들이 바벨탑을 쌓고 있을 때는 홍수를 직접 경험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무지개 언약을 받았던 노아와 셈이 살아있을 때라는 것이다. 노아의 셈 앞에서 후손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바벨탑을 쌓은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그들이 하는대로 놔두므로, 모두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잠재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그들 속에 들어가서 가인과 아벨과 같이 되고, 셋과 에노스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핍박하는 이스라엘로 이어지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그래서 이와 같은 모습이 11장에서 족보로 보여주신다. 11장에서는 에벨의 족보가 등장한다. 1116-26절에서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하나님은 바벨탑을 쌓고 온 지면으로 흩어버린 자들 중에서 다시 또 한 사람을 택하신다. 우리는 두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은 심판하심과 다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의 긴 역사 속에서, 사사시대, 대제사장 시대, 왕족시대, 이스라엘 멸망 후 피지배 속에서의 상황을 살펴보면, 심판과 은혜가 계속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양을 하나도 떨어지지 않고, 다 건져내려고 하시는 것이다.

데라와 아브라함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여명의 빛줄기와 같은 모습을 한다. 데라는 월신 우상숭배자였다. 아브라함도 죽어야 할 그런 존재이었지만 하나님이 찾아가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천문학자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의 아버지가 믿는 월신 숭배에서 그는 천문학을 통해서 많은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강하게 알고 싶어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날 아브라함에게 찾아가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간이 왜,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를 상고하는 자를 찾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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